한때 포커를 정말 좋아했었습니다. 포커에 빠졌던 계기가 있는데요, 제가 열심히 보던 익명의 투자 블로거가
‘투자는 포커와 상당히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시드 머니는 곧 뱅크롤(보유한 포커 자산)이고, 투자와 포커는 이것을 잘 매니지먼트하는 것을 목표로 둔다’(대략 이런 느낌)
라며 포커와 투자를 비교하여 설명한 글을 보고 나서 포커가 뭔지 찾아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알고 있던 포커의 이미지는 도박과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투자에 관한 인사이트를 남기는 블로거가 이런 글을 남겨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포커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포커는 정말 매력적인 게임입니다.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하며, 수학적 능력과 논리적 능력이 동시에 요구됩니다. 확률만 잘 계산한다고 이기는 게임이 아니고, 추론만 잘 한다고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베팅 시스템이 존재하기에, 많은 분들이 도박처럼 받아들이지만 제가 포커를 치면서 느낀 것은 포커는 인생을 1차원으로 옮겨놓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포커를 하지 않은지는 꽤 되었지만 직장에서든, 인간관계든, 개인적인 일이든, 계속 포커에서 배웠던 것들이 연관 지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번 Vezaki 뉴스레터는 제가 포커를 통해 배웠던 삶의 관점 5가지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목차
포커와 인생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포커와 삶, 모두를 잘 하기 위한 5가지
냉정한 자기객관화
ROI가 나오는 싸움을 하고 있는가?
장기적으로 플레이하기(피봇팅하기)
잘 실패하는 법 알기
최선의 선택하기
여기서 포커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Texas hold 'em임을 밝힙니다. 글에서는 ‘포커’로 칭합니다.
포커와 인생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 폰 노이만이 포커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폰 노이만은 ‘포커는 삶을 지배하는 운과 기술 사이의 무한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쓴 <게임이론과 경제 행동>에는 이렇게 표현했죠.
현실의 삶은 1)블러핑으로, 2)사소한 기만전술로, 3)상대는 내가 어떻게 하리라 생각할 것인지 따지는 자문으로 이뤄진다. 이것이 나의 이론에서 말하는 게임이다.
포커는 불확실성 속에서 전략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게임입니다. 기본적인 룰은 내가 가진 카드 2장과 필드에 있는 카드 2장의 조합이 상대의 조합보다 강한 경우 상대가 베팅한 칩 모두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즉, 포커 게임의 목적은 간단합니다. 내가 가진 칩(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게임 플레이어의 칩(시장의 파이)을 빼앗아야 합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요? 인생은 다음 2가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통제할 수 있는 부분
운이 작용하는 부분(통제할 수 없는 부분)
여기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기술과 전략입니다.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행운과 자연재해(사건사고)입니다. 포커는 이 둘 사이를 어떻게 컨트롤 하냐에 따라 실력이 나뉩니다. 주어진 카드와 상대의 카드(행운과 자연재해)와 그에 따른 전략(기술과 전략)을 수립하여 게임을 이겨야 하죠. 이는 우리의 삶과 참 비슷합니다.
책 <블러프>를 쓴 심리학자 Maria Konikova는 포커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포커는 우리 삶에서 상반된 두 개의 힘인 운과 통제 사이의 균형점에 있습니다. 운은 짧게 스치는 친구 혹은 적입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빛나는 것은 결국 기술입니다.
즉, 포커는 파이를 빼앗는 하나의 목표(상대방의 칩을 뺏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파이를 빼앗기 위해서는 1)불확실성을 돌파하고 2)통제할 수 없는 부분,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3)이를 잘 컨트롤 해야 하죠.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목표가 있습니다. 여기서 각 목표 당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 불확실성을 돌파하는 각각의 포커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을 Betting하고, Fold(게임을 포기하는 행위)합니다. 포커는 1차원적으로 단순화한 우리의 삶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포커를 잘하기 위해 정의한 5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이는 삶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1. 냉정한 자기객관화
포커는 내가 어떤 포지션에 있고, 어떤 카드를 쥐고 있고, 내가 어떤 성향의 플레이어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포지션이 빠를수록 정보의 양이 부족하기에 불리하고,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느냐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며,
본인의 플레이 성향에 따라 다른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있지 않는 포커 플레이어는 본인이 EP(Early Position, 가장 먼저 액션을 해야 하기에 불리하다)임에도 강하게 베팅한다던가, 약한 패임에도 Fold 하지 않는다던가, 블러핑을 하는 이미지가 씌워졌음에도 또 블러핑을 합니다. 이는 삶에서도 같습니다.
구독자님은 어느 위치에 있고, 어느 정도까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예시를 하나 들겠습니다. 공부에 익숙하지 않은 한 사람이 유행하는 의학 드라마를 보고 감명이 깊은 나머지 의대생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목표에는 몇 가지 따져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대생을 준비할 수 있는 재력이 있는가? 지속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끈기가 있는가? 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학습 능력이 존재하는가?’
등 자기객관화를 통해 자신이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저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허무맹랑해 보일 지라도 믿음을 잃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면 분명 이뤄낼 것입니다. 다만, 분명 더 현실적이고 나에게 맞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공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유의미한 결과를 공부로 만들어내는 것에는 10년도 더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객관화를 통해 자신에게 더 맞는 과정을 찾으면, 10년을 2년으로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역시 자기객관화가 필요하겠죠.
특히 요즘 스마트 스토어, 창업, 자영업 등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결과만 보고 시작하는 유행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에도 냉정한 자기객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나만 할 수 있는, 내가 강점을 가진 분야가 분명 존재합니다.
2. ROI가 나오는 싸움을 하고 있는가?
포커가 수학적인 게임인 이유에는 확률과 베팅에 있습니다. 포커에서는 이를 팟 오즈(Pod Odds)가 좋냐 나쁘냐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가성비가 좋냐 나쁘냐, 즉 ROI(Return On Investment)를 잘 계산하느냐입니다. 이는 포커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입니다.
포커에서 참여하기 좋은 게임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칩을 베팅하고 많은 칩을 얻을 수 있을 판입니다. 리스크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칩이 적으면 굳이 무리하게 들어갈 필요가 없죠.
언뜻 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초보자의 경우에는 이 계산이 잘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ROI가 엉망인 플레이를 하곤 합니다. ROI를 따질 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을 잘 구분해서 계산해야 합니다.
삶에 있어서 너무나 아름다운 것(과할 정도로)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요? 그것들은 ROI가 나오나요? 물론 ROI만 따진다면 위대함은 탄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기본적인 ROI 계산을 잘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3. 장기적으로 플레이하고 있는가? (피봇팅하기)
포커는 5판만 하면 초보자도 세계 챔피언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운의 요소가 작용하는 게임이기에 게임 수가 적을수록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게임 수가 많아질수록 실력의 차이는 분명해집니다. 조금 해봤다고 그것을 진짜 실력이라고 규정지으면 안 되는 것이죠.
단기간으로 무언가를 평가하면 잘못 평가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나는 투자를 잘하는 것 같다!’, ‘나는 사업을 잘 하는 것 같다!’, ‘내 작품이 실패했다!’
옳고 그름을 보려면 장기적인 그래프를 그려봐야 합니다. 단기간에는 환경 요소가 너무 강하게 작용합니다. 본인의 전략이 맞다면 우상향을 그릴 것이고, 잘못되었다면 0에 수렴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그래프를 그려봤을 때 잘못된 그래프가 그려진다면 전략을 수정해야 합니다. 즉, 피봇팅해야 하는 것이죠.
4. 잘 실패하는 법 알기
포커는 감정적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소모하는 게임입니다. 저 역시 지면 화나서 잠을 못 자고, 이기면 이겨서 잠을 못 잤던 기억이 납니다(오프라인에서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습니다) 이겼다고 확신하는 게임에도 배드빗(Bad Beat, 낮은 확률로 지는 상황)으로 질 때도 있고, 아예 졌다고 포기했을 때도 이기는 게임이 포커입니다.
포커 용어로는 이렇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를 틸트(Tilt)라고 부릅니다. 쉬운 말로는 ‘멘붕’입니다. 실력이 올라갈수록 이 틸트를 방지하는 것은 정말 중요해집니다. 따라서 틸트를 방지하기 위한 ‘잘 실패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요, 이는 다음 2가지입니다.
패배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지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올바르게 지는 법이란, 내 결정과 플레이, 잘못을 한 지점을 분석하는 것(Lesson-learned 하기)입니다.
배드빗이나 외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되는 상황(자연재해 또는 사건사고)에는 굳이 이유를 찾지 마세요. 감정만 소모할 뿐입니다.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것
내가 투자한 것이 아까워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다가 칩을 모두 날리고 틸트를 맞이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포커에는 히어로 폴드(Hero Fold, 큰 손해를 볼 게임을 Fold 함으로써 약간의 손해로만 끝내는 것)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본인이 실패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최악의 스노우볼은 굴러갑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좋은 플레이입니다.
5. 최선의 선택하기
당연한 말이지만, 순간순간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특히 다음의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직관의 오류에 맞서는 선택을 할 것
포커는 직관의 오류에 맞서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확률과 행운에 휘둘리지 않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동전의 뒷면이 5번 나왔다고 다음에는 무조건 앞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선택에 있어서는 감정이 아닌 이성을 따라야 합니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할 것
내게 주어지는 카드와 필드의 카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이를 너무 신경 쓰면 본인 에너지만 소모될 뿐입니다.
부모님, 환경, 주어진 신체 조건은 이미 내게 주어진 카드입니다. 내가 할 역할은 다음의 플레이를 잘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과감한 선택을 할 것
손해를 보지 않으려 소극적인 플레이만 하면 절대 많은 칩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때로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해야 합니다.
Risk를 걸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부와 명예, 사랑 모든 것이 같은 흐름입니다. ‘큰 것’을 얻고 싶으면, ‘큰 선택’을 해야 합니다.
글을 마치며
포커는 복잡한 삶의 다양성을 1차원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포커 관점으로 봤을 때 우리는 커리어, 인간관계, 사랑 등 여러 개의 포커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각의 게임에 있어서 목표를 위해 베팅하고, 폴드합니다. 구독자님은 어떤 포커 게임을, 어떻게 플레이하고 계신가요?
글이 다소 길었습니다. 긴 글임에도 끝까지 읽어주신 구독자님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럼, 이번 Vezaki는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 주에 더 좋은 글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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