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무언가 무게감을 지닌 단어 같습니다. 보통 '재밌어', '즐거워' 정도로 표현하지, '행복해' 라고는 잘 말하지 않죠. 행복은 '엄청나게 이상적인 무언가'를 가르키는 단어처럼 느껴집니다(저만 그런 걸까요?)
특히 행복은 성공이라는 단어와 묶여 사용되기도 합니다. 행복을 위해 성공해야 하고, 성공하면 행복한 삶이 따라오리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무엇이 성공인가요? 좋은 차, 멋진 집, 화목한 가정, 사회적 명예인가요? 그것을 얻고 행복을 느끼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그러면 행복은 또 뭔가요?
낡고 지루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행복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추상적인 행복이 아니라 무엇이 진짜 행복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번 Vezaki 뉴스레터는 행복에 대한 오해, 그리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는 것에 대하여 다뤄보았습니다.
목차
행복이란 목표가 아니다
행복을 위한 조건 3가지, 자기결정성 이론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관계
행복이란 목표가 아니다

책 ‘해피크라시 : 행복학과 행복 산업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가’를 공동 집필한 심리학자 에드가 카바나스(Edgar Cabanas)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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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행복한 삶)이 있다는 약속은 자기계발서, 코치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목표란 끝없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코 달성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계발서를 사는 사람은 한 권만 사지 않고 여러 권을 삽니다. 만약 그 책들이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면, 그중 하나만 읽어도 사람들이 행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린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 순환 고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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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카바나스는 ‘더 행복한 삶’은 잘못된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더 행복한 삶은 끝도 없고 정답도 없기 때문입니다. 전자기기를 사고 나면 금세 최신 버전이 나오기 때문에 절대 최신 버전을 가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따라서 더 행복한 삶은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마치 이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믿게 만드는 자기계발서, 성공 코치들의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말하죠.
더불어 그는 해피콘드리아(Happycondriacs)라는 개념을 말했는데요, 해피콘드리아는 자신이 아프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믿는 건강 염려증 환자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개념으로 충분히 행복한데도 불구하고 더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해피콘드리아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며 여기에는 자신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이 잘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처럼 보이는 것’에 집착하죠. 남들처럼 좋은 차가 없어서, 연봉이 높지 않아서 등 내가 불행한 이유처럼 보이는 것은 많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갖춰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다만 이것이 충족되더라도 다음의 것이 등장할 것입니다. 해피콘드리아의 삶은 끝나지 않는 영원한 굴레인 것입니다.
에드가 카바나스는 우리가 행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이 낳는 문제는 행복은 현재에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인데 불구하고, 현재에 행복이 없다고 믿을 때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 때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요? 무엇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걸까요?
행복을 위한 조건 3가지, 자기결정성 이론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이론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입니다. 이 이론은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 리차드 라이언(Richard Ryan)이 발표한 것으로 외부의 영향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개인의 행동에서 동기부여와 만족감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입니다. 더불어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방식으로 성장, 변화, 발전하려는 동기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동기는 다음 세 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의 충족에 의해 주도된다고 가정합니다.
자율성 Autonomy
외부의 환경에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욕구를 말합니다. 개인이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자율성은 독립성과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독립성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개인과 개인을 설명하는 관점이지만 자율성은 내적인 것으로 개인의 의지와 선택을 말합니다.
유능성 Competence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능력 있는 존재이기를 원하고 자신의 능력을 향상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너무 쉽거나 어려운 과제가 아닌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본인의 유능함을 지각하고 싶어 하죠. 이를 유능성 욕구라고 합니다. 개인이 스스로를 유능하다고 여길수록 도전을 추구하고, 어려움에 직면하여 성취감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욱 높습니다.
이러한 유능성에 대한 욕구 충족은 아래 연결성과 관련이 깊기도 합니다.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능성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연결성 Relatedness
연결성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의미 있는 관계를 경험하고, 사회 집단에 속하고 싶은 욕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포함합니다. 관계 그 자체에서 나타나는 안정감, 소속감을 지각하는 것을 말하죠.
이 세 가지가 고루 갖춰졌을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으며, 내가 하는 것에 유능함을 느끼고, 또 나를 인정해 주고 이해해 주는 타인과 함께 할 때입니다.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 역시 위 행복의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이네요!
캐릭터를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고(자율성)
게임을 반복하며 실력이 증가하고, 등급이 올라갑니다(유능성)
누군가와 협동 또는 경쟁합니다(연결성)
더불어 영화 속 주인공의 서사도 위 조건을 충족하는 구조로 만들어집니다. 능력은 있지만 공동체와 충돌하던 영화 <탑건>의 매버릭은 동료의 죽음으로 각성하여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뛰어난 수학적 능력이 있지만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던 윌 헌팅에게 숀 맥과이어가 나타나며 그가 한층 성장하도록 도와줍니다. 자율성과 유능성, 그리고 연결성이 모두 충족되면서 행복한 결말이 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관계

정신과 의사 로버트 월딩거(Robert Waldinger)는 약 75년간 724명과 그들의 자손의 인생을 추적해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지 연구하는 엄청난 실험을 했습니다. 해마다 그들의 직업과 가정생활, 건강 상태에 관해 설문했고, 기간이 길다 보니 연구를 다음 세대 사람이 이어받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로버트 월딩거는 이 연구의 네 번째 총 책임자였죠.
로버트 월딩거는 75년간의 연구에서 얻은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좋은 관계가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그가 말한 교훈 3가지입니다.
고독은 해롭습니다.
연구 결과 가족, 친구, 공동체와 사회적 연결이 긴밀할수록 더 행복하고,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은 행복감을 덜 느낄 뿐만 아니라 중년기에 건강이 더 악화되고, 수명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관계의 질이 가장 중요합니다.
로버트는 연구 대상 남성들의 인생을 80대까지 따라가 본 뒤, 건강하고 행복한 80대가 누가될지 예측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행복은 얼마나 만족스러운 인간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결과를 얻었죠.
50세에 인간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사람들이 80세에 가장 건강했으며, 배우자 만족도가 높았던 남녀에 진행한 설문에서는 신체적인 고통이 심한 날에도 마음은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불행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은 신체적인 고통이 심한 날에 그 고통이 감정적인 고통에 의해 더욱 극대화된다고 답했습니다.
친구가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좋은 관계가 중요합니다.
좋은 관계는 몸뿐만 아니라 뇌까지 보호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애착으로 단단히 연결된 관계를 가진 80대는 그렇지 않은 80대보다 더 건강하며, 상대방이 자신이 힘들 때 의지가 되어줄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기억력이 더 선명하고 오래 가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반면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이 의지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더욱 빠른 기억력 감퇴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로버트는 그렇다고 해서 좋은 관계가 언제나 원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연구대상인 80대 부부 중 몇몇은 허구한 날 다퉜습니다. 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가 의지가 되어줄 거라고 그들이 믿는 한, 그런 다툼은 그들의 기억력에 큰 타격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로버트 월딩거의 75년 연구 결과를 보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에 김이 새기도 합니다. 좋은 관계가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죠. 다만 그가 TED 강연에서 한 말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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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간의 연구 가운데서 은퇴 후 가장 행복했던 사람들은 직장 동료와 친구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연구대상들도 젊은 시절에는 대부분 부와 명성, 높은 성취를 추구해야만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75년 동안 연구는 거듭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은 그들이 의지할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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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행복은 선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쁜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이 행복을 선택할 여유를 얻지 못하거나, 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미래에 있으리라 믿는 행복, 에드가 카바나스가 말하는 존재하지 않는 행복을 향하는 실수를 합니다.
저는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사실 단순한 것들이 떠오릅니다. 친구들과 함께 나눴던 실없는 대화와 고민거리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의지했던 공간, 가족과 함께 형편없는 음식을 먹으며 웃었던 기억, 떠났던 여행지의 날씨 따위입니다. 그때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행복하기 위해서 했던 것들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 정말 좋았는데’라는 기억으로 제게 남았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기억도 훗날 행복한 기억으로 남겠지만, 오늘의 나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지금의 모든 것들과 내 환경,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더 감사하고 애정을 가지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우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베자키 Vezaki
**지난 글에서 Hallucination 현상이 ‘진짜를 가짜처럼 답하는 현상’으로 잘못 표기되었습니다. 이에 ‘가짜를 진짜처럼 답하는 현상’으로 정정합니다. 제보해 주신 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Ref
해피크라시 : 행복학과 행복 산업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가 - 에바 일루즈, 에드가 카바나스
Robert Waldinger: What makes a good life? Lessons from the longest study on happiness | TED (링크)
인간은 언제 가장 행복할까? 뇌과학자가 말하는 [행복의 3가지 조건] - 조승연의 탐구생활(링크)
혹시 나도 행복 염려증?...'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멈춰야 하는 이유' - BBC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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